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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Road

그녀를 만나다.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떴다.

손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핸드폰을 찾았다.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30분. 눈이 번쩍 떠졌다. 미친듯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이빨도 닦았다. 광속의 속도로 옷을 걸쳐댔다. 가방안에 책 몇 권과 수첩, 지갑과 핸드폰을 쑤셔넣고 우산을 손에 잡으며 번개같이 집을 나왔다.

헐떡거리며 버스정류장에 갔다. 발을 덜덜 떨며 마음을 진정시켜보려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꼭 이런 날에는 버스가 바로 오지 않는다. 마을버스란 5분에 한 대씩 와줘야 하는 것을...기다리기를 10분, 버스가 도착했다. 약 3분 만에 나를 전철역에 내려놓아 주었다. 내리자마자 또 뛰었다. 개찰구 앞의 전광판을 통해 열차도착에 관한 정보를 스캔한다. '현재 열자 접근 중!!!' 부스터를 달은 자동차가 니트로를 쓰듯이 뛰었다. 죽기살기로 뛰었다. 역시 인간의 살아보겠다는 본능이란 대단한 것이다. 플래폼에 도착하자 열차의 문이 열렸다. Nice Timing!!! 적어도 늦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렇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나는 뛰었더랬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고등학교 때 였나?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나더러 라디오를 주의깊에 들으라는 거다. 언제나 라디오를 끼고 사시는 분이라 김경호, 조과우 등 좋아하는 가수들의 신곡이 나오면 나보다 먼저 아시는 분이라 또 무스 노래가 새로 나왔나 싶었다.

그런데 이거 뭔가? 누구지도 모르는 여자가 빠르게 들어보지도 못한 세상을 얘기하는게 아닌가? 워낙에 오래돼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난다. 다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내며 자신이 본 것을 풀어놓고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엄만 혼자서 전세계 오지를 여행한 대단한 여자라고 그녀를 소개해줬다. 흥미가 갔다. 호기심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나도모르게 피식거리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 한비야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러부터 얼마가 지났을까? 하루는 엄마가 책 한 권을 읽고 계시는게 눈에 밟혔다. 항상 책을 가까이 하시기에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인데 말이다. 난 무슨 책이냐고 물었고 엄만 한비야 책이 새로나왔다고 답해주셨다. 그렇게 읽은 책이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이다. 내가 읽은 첫번째 한비야의 책이다.

그렇게 그녀를 다시 만났다.

수중에 항상 돈이 모자르던 시절, 나는 항상 모텔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그녀가 굉장히 부자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걸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했더 거 같다. 되도 않는 생각을 했던거다.

어쨌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이 땅을 걸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아니 다른 말이 필요없다. 그저 부러웠다. 그 누구보다 부러웠다. 부러움 뿐이었다. 나도 가고싶다. 하지만 어떻게? 난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 걸..? 그렇게 생각했었다. 바보같이....

어쨌든 이 책을 읽은 후로 나는 딱히 밥먹을 곳을 찾지 못하면 무조건 기사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중국견문록'이 나왔다

이번에도 엄마 손에 들려 책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나는 읽지 않았다.-사실 끝까지 다 읽지 않았다.- 궃이 이유를 대자면 고등학교 때 배운 중국어에 대한 향수랄까? 특히나 한자에 질려하던 나였다. 그 발음들도 마음에 안든다. 4성이라니....그렇다 난 중국어를....그리고 중국이란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왜 중국에 갔는지느 궁금했다. 그래서 책의 초반부는 읽었다. 그냥 그게 궁금했다.

이후, 한동안 그녀에 대해 잊고 살았다.

어디선가 들리는 얘기가 월드비전이라는 NGO단체에서 일한다는 소리는 들었던 거 같다. 난 '역시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구나' 싶었다. '뭐든 자기 좋은데로 사는구나' 싶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거라곤 홀로 오지여행을 했고, 맨발로 국토종단을 했으며 중국어를 배우러 중국에 다녀온 후 NGO에서 일한다는 단순한이력일뿐인데....정말 어릴 적에는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반성해라!!

그러다 작년 무릎팍도사에 나온 그녀를 보았다. 내가 몰랐던 그녀의 삶. 그녀가 들려주는 NGO 구호활동 이야기들....얼마 전 어머니 부탁으로 구입한 그녀의 새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밤을 새며 읽었다.

그리고 그녀의 무릎팍도사 출연분을 다운받아 놓고 보고 또 봤다. 몇 번이고 질리지도 않을 정도로....

보면 볼 수록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은 점점 더 강렬해져갔다. 단 한 번 만이라도...

여기저기 널려있는 백수 중 하나였던 나는 단 한 달만에 그것도 순식간에 스리랑카로 떠나게 될 몸이 됐다. 가기 전에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전 교보문고에서 본 저자 사인회가 생각났다. 그녀의 이름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11일 오후 1시.

날짜와 시간을 확인하고 달려갔다.

그 곳에 그녀가 있었다.

내가 발벗고 나서서 사인받겠다고 난리친 최초의 1인이니 그녀는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악수도 했고, 잠시 짧게나마 얘기도 했다. 앞으로의 일에대한 조언도 들었다. 미리 생각했던 말을 거의 못했지만...모 그래도 상관없다. 첫술에 배부르랴....1년 뒤도 있고, 만약 생각대로 된다면 4년 뒤에는 함께 식사도 하게 될 것을...

어쨌든 그녀는 방송에서 본 것과 같이 말하는게 무슨 니트로 추진이 가능하도록 튜닝한 엔진달은 경주용차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그녀의 적극적인 리액션!!!

역시 리액셔은 예능에서 뿐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중요하다. 나도 리액션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5분도 안되는 시간, 정말 짧은 순간 속에서 짧은 대화와 짧은 악수의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했지만.....그래도 나는 오늘 그녀를 만나서 행복했다.

특별할게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얼굴을 마주대하다는 행위 하나만으로 누군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건 정말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