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t. Fuji 2012 Japan 07.11 ~ 07.15

오르다. [Climbing]

벤치에 누워 후지산행 버스티켓을 꺼내보았다.


드디어 간다. 그렇게 기를 쓰고 어떻게든 가보겠다고 이리 머리굴리고 저리 머리를 굴려댔는데 막상 손에 티켓이 들려있으니 기쁨보다는 덤덤한 마음이 더 크다. 아니 약간의 긴장감이 내 마음을 감돌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리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이어폰에서 나오던 음악이 끊기고는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타카피의 '청춘사연'


알람이다.


기지개를 켜고, 베낭을 매고, 선그라스를 끼고 폼나게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기저기 등산배낭을 앞에두고 거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운동화에 반바지, 끈나시에 선그라스 하나 낀 쿨한 백인누나부터 다듬어지지 않은 수염에 담배를 입에 문 다부지게 생긴 아저씨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정도다.


버스가 한 대, 두 대 도착하기 시작했다.


신주쿠 - 후지산 행 고속버스는 한 타임에 세 대 씩 배차가 되어 있는 듯 했다.


티켓을 확인받고, 버스에 올랐다.


고속버스라는데 버스가 기어가는 느낌이다. 시속 몇 키로나 될까? 창밖은 오밀조밀한 주택, 건물부터 공장, 학교, 작은 하천으로 가득차 있었다.


야간산행에 대비해 잠시 눈을 붙이는게 좋을듯하다는 생각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잡아본다.


하지만 그 뿐이다. 생각만큼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몸을 꼬기를 여러번, 깜박 졸았나보다.


눈을 뜨니 갑자기 사람들이 창밖을 향해 머리를 내밀며 카메라를 들이밀기 시작하는 듯 했다.


후지산이다.


반대편 창 너머로 후지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위에 남아있는 눈이 '내가 후지산이다.'라고 하는 듯 했다.


잘 잡히지도 않는 초점을 잡아보며 한 컷이라도 잡아보려했으나 쉽지가 않다.



한 참을 가더니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고도가 올라가는게 표지판을 통해 확인되면서 다시금 흥분되기 시작한다.


드디어 왔다.


후지산.


후지산고고메(5th Station)에 도착했다.


등반에 필요없는 물건들을 유료캐비넷에 넣었다. 배낭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휴게소에서 왕만두와 커피로 저녁을 떼우고, 뜨거운 캔커피로 속을 달랬다.


벌써부터 바람이 세찬게 만만치않아 보인다.



이 날을 위해 새로 구입한 얇은 주황색 바람막이를 입었다. 한결 따뜻하다. 바람이 보니 올라가면 7부 바지 때문에 고생 좀 하겠다 싶다.


낮에 산 헤드랜턴을 부니햇 위에 자리를 잡아줬다. 나쁘지 않다. 각도조절도 된다.


빛이 조금 약한 느낌이 들긴하나 아예 못쓸 정도는 아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어느새 해가 완전히 넘어갔는지 등산로 입구쪽이 어두컴컴하다.


혹시몰라 등산로 입구 앞에 있는 지도를 사진찍고, 본격적으로 산해을 시작했다.



한 15분 정도 올랐을까? 어느새 후지산 6th Station이다. 


페이스가 너무 빠른건 아닌가 약간 걱정도 됐다.


하지만 바람도 세차고 기온도 점점 내려갈 것이 분명한 만큼 어서 몸을 뜨겁게해서 근육들을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필요불가결한 선택이다.


한 시간 즈음 쉬지않고 미친듯이 올라갔다.


역시 예상대로 근육도 풀리고 몸에 열도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우연찮게도 후지산 7th Station이다.


잠시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열량보충을 했다. 역시 산행에 초콜릿은 필수다.


1.5 L 포카리스웨트를 쉬지않고 들이켰다.

정신이 또렸해지는 느낌이다.


산 아래 몇몇 불빛들이 모여있는 곳들이 보인다. 서로 얼싸안으며 있는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몸이 식을까 다시 다리를 움직였다.


올라가는 건 좋은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올라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죽치고 앉아있는건 별로다.


올라가면 또 쉴 수 있는 산장이 있을테니 그 곳에서 쉬자.




위를 올려다보니 여기저기 산장들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저 불빛들을 향해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의외로 야간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지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동지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8th Station이다.


해발 3100 고지다.


네팔 다녀온 이후로 3000 고지를 넘은 건 처음이다.


괜시리 뿌듯해진다.



사람들이 물건도 사고, 화장실을 가기도 한다.


- 어떤 산이든 위로 올라갈 수록 물가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후지산도 마찬가지다. 휴게소에 들어가 잠시나마 몸을 녹이고 싶으면 얼마의  돈을 지불해야한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고도가 올라갈 수록 지불해야 할 액수는 더 커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는지 배낭에서 담요를 꺼내기도 한다.


처음 계획대로 목요일에 왔다면 나도 저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느새 앞에 빨간 도다이가 보인다.


정상 근처에 가면 신사가 있다고 들었다.


벌써 다 온건가?


그럴리가 없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계속 발걸음을 재촉한다.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가 부모의 손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그 모습이 신기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후지산은 일본 사람들에게 둘도 없는 영산으로 여긴다. 일본의 제1산. 


아이를 데리고 야간산행까지 감행하는 건 이 때문일까?


조금 다른 얘기지만 후지산 등산을 놓고 일본인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후지산을 안가도 바보, 두 번 가도 바보다.'란 말이 있다.'


돌산이니 풍경이나 산을 타는 재미는 분명 떨어지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본인 이라면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느냐는 식이다.


한 번은 꼭 가야한다는 걸 아주 대놓고 강조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지면서 돌가루들이 미친듯이 얼굴을 쳐댔다. 어떤 때는 눈도 못 뜰 지경이다. 고글 같은 것이 있을리 없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선그라스를 꺼냈다. 


야간산행이라 누구나 하나씩 헤드랜턴을 끼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며 깊은 어둠 속의 산을 비추며 올라가고 있다.


선그라스를 꼈지만 시야가 그렇게 못볼 정도는 아니다.


아니, 눈으로 날아들던 돌가루들을 막아주니 시야 확보에 더 용이하단 느낌까지 든다.



다음 산장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수분보충이 필요하다.


기온도 많이 떨어진 듯 하다. 옷가지를 꺼내어 두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벽을 등지고 앉아 배낭에서 Aki가 준 3단 우산을 펼치고 몸 앞을 가렸다.


따뜻하다. 다리 사이에 우산대를 끼워 고정시켰다.


나쁘지 않다. 물을 마시고, 열량이 떨어질까봐 초콜릿을 먹었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여기서 잠시나마 눈을 붙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