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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Fuji 2012 Japan 07.11 ~ 07.15

벼룩시장 [Flea Market]

눈이 번쩍 떠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아이폰을 찾아 손으로 온 캡슐안을 휘저었다.


손가락에 익숙한 질감의 무언가가 걸렸다. 아이폰이다.


시계가 10시를 향해 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늦어도 8시에는 움직이고 싶었는데......


자리를 박차고 나와 Aki를 깨웠다. 피곤할텐데 나 때문에 잠에서 깨는 듯 해서 괜시리 미안하다.


지하1층의 캐비넷에 넣어둔 짐을 챙기려 내려갔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세면대 앞에 섰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머리는 여기저기 미친듯이 집을 지어져 있었다. 분양해도 될 정도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잇몸이 뭔가 좀 어색하다. 분명 1회용 칫솔 때문이다. 너무 오래 칫솔질을 했나보다.

- 캡슐호텔에는 입안에 넣고 바로 칫솔질을 할 수 있는 치약이 베어있는 1회용 칫솔이 비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크기도 작고, 쓰기에 따라 너무 자극적이므로 자기 칫솔이 있다면 자기 것을 쓰는 것이 좋다. -


주린 배를 손으로 비비며 캡슐호텔을 나왔다. 


밤새 그렇게 쏟아지던 비는 또 어디론가 가버렸나보다. 이렇게 날씨가 좋을수가...


일단 뭔가 좀 마시고 싶었다. 산에 가려고 사두었던 물품들 - 물, 간식거리 -은 이미 요코하마, 카마쿠라를 거치며 그 대부분이 이미 소진되었던터라 Aki에게 돈키호테에 가지고 했다.


아키의 뒤를 따라 돈케호테에 갔다. 500ml 음료수 한 병, 물 2L 한 병, 포카리스웨드 1.5L 한 병, 초콜릿 1 봉지를 샀다.


작은 음료수병의 뚜껑을 따서 목에 부어넣었다. 조금 정신이 나는듯 하더니 여지없이 갈증이 찾아온다.


허기도 지고 해서 근처 괜찮은 라면집이 없냐고 Aki에게 물었다. 역시나 해장은 라면이 제겨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긴 일본이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일렀던지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결국 작은 24시간 식당에 들어갔다. 고마운 마음에 아침은 내가 사려했는데 Aki는 괜찮다며 자기 것은 스스로 계산했다.


괜시리 더 미안해진다.


확실히 Aki의 위는 나보다 한 수 위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아침도, 그것도 밤새 술을 마셨는데도 아랑곳하지않고 금새 한 그릇 뚝딱 해치워 버린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남긴 고기도 다 먹어치워버린다. 대단하다.


산행에 필요한 물품도 샀고, 어쨌든 밥도 먹었다. 후지산행 직행버스티켓을 타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아쉽게도 이미 12시 차량 티켓은 모두 매진이란다. 가장 빠른 버스는 4시 50분 에나 있다고 한다. 결국 야간산행인가.......


산 위의 산장까지 모두 잡아놓았었는데 아무런 장비도,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야간산행이라니.


그래도 갈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비행기타고 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티켓을 샀다.


역시나 Aki의 도움으로 버스터미널 티켓판매소 바로 옆에 있던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가장 저렴한 헤드렌턴을 샀다. 배터리까지 사니 한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 들었나보다.


일단 모든 준비가 끝난듯 싶었다. 지금까지 약 16시간 동안 함께 다니며 도와준 Aki가 너무나 고마웠다.


Aki의 얼굴에 피곤함에 뭍어나는것이 너무도 미안스러워 난 이제 괜찮으니 집에 가서 쉬는게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래도 Aki는 내 걱정을 해준다. 산위로 올라가면 추울거라며 지금 입고 있는 7부 바지로는 산에 가면 안된다는 거다. 나에게 유니클로에 옷을 사러 가자고 한다.


그저 비행기타고와야 하는, 그래서 자주 보지 못하는 외국인 친구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걱정말고 집에가서 쉬라고 했다. 아니 몰아붙였다.-부드럽게-


Aki도 내 뜻을 알아들었는지 나중에 후지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꼭 보고싶다는 메시지를 남기며 신주쿠역 개찰구를 지나 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해는 하늘 정 가운데에 떠 있었고, 터질듯이 팽창한 습기와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편의점에 들어가 핫팩을 사고, 역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규동을 먹었다. 일부러 제일 기름져 보이는 걸로 골라 먹었다. 야간산행이다. 거기에 정상고도는 해발 3700m를 웃도는 곳이다. 최대한 지금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근처의 아웃도어용품점에서 스틱을 살까 한 참을 고민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무게도 얼마 되지도 않는 배낭메고 가는데 너무 요란떠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게다가 스틱을 사면 내일 귀국 시 비행기에는 들고 탈 수도 없다. 새로 패킹을 해서 따로 실어야 한다. 사서 귀찮아질 필요는 없다.


마땅히 어디 들어가서 시간 때우기도 무엇해서 신주쿠중앙공원으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한 20 - 30분 정도 거리에 있으니 거리도 적당하다. 가서 벤치에라도 몸을 좀 뭍어둘 생각에 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길 건너 신주쿠 중앙공원이 보인다. 마침 주말이라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나보다. 


처음 도쿄에 왔을 때 처음 왔던 곳이 바로 이 중앙공원과 그 길 건너편에 있는 도쿄시청이었다. 무료전망대가 있어 도쿄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도쿄에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그 때가 떠오른다.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그 때는 시간도 오후였고, 너무 더워서 벼룩시장도 거의 끝물이어서 볼만한게 없어서 많이 안타까웠었는데 오늘은 공원 폭포 앞 공터가 여러가지 물건들로 가득차 있다.


반가운 마음에 육교를 단숨에 건너갔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양산을 쓰고,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까지 무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나 여기도 여자옷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종류도 많고, 가지각색이다.


슈퍼패미콤같은 유물이 되어버린 게임기부터 SONY CD PLAYER, 명품 선글라스, 아동복, 각종 소품들..


일본 특유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디자인의 물품들이 많다.



한 참을 둘러보다 괜시리 짐이 될까 싶어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그늘진 계단에 앉아 가방의 물품을 모두 꺼내어 다시 정리했다.


배낭을 쿠션삼아 벽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본다.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