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2, 2011
새벽 2시.
눈을 꿈벅거리며 신발을 챙겨신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문득 이 때다 싶어 숙소 뒤에 자리잡은 안나푸르나 남봉을 바라봤다.
은은한 오오라를 내뿜는 달빛 아래 나를 잡아먹을 듯한 거대한 위용을 내뿜는 안나푸르나 남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이었다. 아니 이건 공포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내가 살면서 이 정도로 무엇인가에 압도된 적이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아이폰을 급히 잡아들고 나와 셔터를 눌러댔다.
카메라의 한계때문인지, 아니면 카메라로 담기에는 너무나 벅찬 모습이었는지 단 한 컷도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한참동안 산을 응시하며 마주했다.
어느새 공포감은 산에대한 경외감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저 산이 내뿜고 있는 기를, 기상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다시 이 곳에 왔을 때 나는 저 산과 같은 인간으로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떠오르는 태양을 위해 달이 점점 깊어갔다.
오전 5시, 일출 시간에 맞춰 산을 보기위해 일어났다.
안타깝게도 달빛을 뒤로한채 그렇게 뚜렸하게 보이던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
간 밤에 비가왔고, 구름이 ABC를 에워싸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의 상징물.등반시 이 곳에 제사를 지낸 후 등반에 오른다고 한다.바위 곳곳에 산에서 목숨을 잃은 산악인들의 위패가 새겨져 있다.
아쉽지만 아침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베이스캠프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본격적인 하산에 들어갔다.
하산 중 MBC 즈음에서
데우랄리 즈음해서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은 어느새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아 롯지로 들어갔다.
뒤이어 몇몇 외국인들도 롯지 레스토랑에 들어와 비를 피했다.
코코아 한 주전자를 시켜 초코과자를 찍어먹으며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야외온천 한 번 가보겠다는 우리의 원대한 계획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대로 발이 묶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태훈이의 온천에 대한 갈망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있었다.
결국 조금이라도 빗줄기가 수그러들면 운에 맡기고 다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온천 한 번 가보겠다고 정말 미친듯이 걸었다.
시누와에서 맡겨놓은 짐을 찾아 배낭에 넣었다.
몇 일만에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음이 틀림없다.
짐을 다시 배낭에 넣었지만 전혀 부담이 없었다.
너무 기분이 업 되어있었던 걸까?
점심을 먹고 갑자기 페이스를 올려서인지 오르막 계단에서 배를 잡고 주저 앉았다. 장이 꼬이는 듯 했다.
이후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다.
시누와 - 촘롱 구간에서는 무릅까지 말썽이 생겼다.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선두에 선 태훈이를 쫒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겨우겨우 5시 경 촘롱에 도착했다. 약 2900m를 단 하루 만에 내려온 것이다.
해는 이미 산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온천이 있는 지누까지 가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에 오늘은 여기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만 3일만에 머리를 감고 씻었다.
면도를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나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떨지는 않고 잘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마음을 휘감았다.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