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4, 2011
우리금융그룹 연수팀과 아침을 함께하며 속을 풀었다.
오전 중에만 출발하면 무조건 마무리되는 상황이라 급할 이유가 없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먼저 길을 떠나는 연수팀을 배웅했다.
식사를 마치고 연수팀과 기념촬영을 했다. 아쉽지만 지금까지 이 때 찍은 사진은 받아보지 못했다.
어떤 연락도, 메일도 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본다면 사진 좀 보내주셨음 좋겠다.
짐을 꾸리고 있는데 가이드 텐지씨가 비보를 전해왔다. 오늘도 번다(파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산을 내려가도 포카라까지 갈 수 있는 차량이 없다는 뜻이다.
포카라까지는 걸어서 세 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에 우리금융그룹 연수팀에 부탁을 해보자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추격을 시작했다.
약 1시간 정도의 차이였다.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차이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태훈이를 먼저 보내면 되니 큰 걱정은 될 수 없다는 계산이었다.
점심 때 즈음 해서 본진을 따라잡았다.
어제 대접받은 것도 감사하고하고 갑작스런 부탁인지라 롯지에서 쿨레몬을 사서 대접하면서 부탁들 드렸다.
허나 차에 자리가 없고, 그쪽 가이드의 거절에 의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고도가 낮아지면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네팔짱에 전화를 해서 포카라짱의 전화번호를 얻어 차량을 보내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히 5시 이후에는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얻었고, 픽업을 요청했다.
다행스러운 마음에 숨을 고르고 차량을 구했다는 소식을 연수단에 전하며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작은 마을 사이사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내려왔다.
길가의 작은 상점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면서 자축을 했다.
드디어 끝났다. 한 가지 커다란 일을 끝마친 느낌이었다.
5시가 되자 차가 도착했다.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시원섭섭하다.
하루 전만해도 산 속 한 가운데 있었는데...
빌려쓴 장비를 돌려주기 위해 먼저 트레킹 용품점으로 향했다.
누가 알았을까? 여기서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처음 장비를 빌릴 때 확실히 차용증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10일 렌트가 아닌 6일 렌트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4일이나 경과했기 때문에 보증금으로 걸어놓은 돈에서 일부를 제하고 돌려주겠다는 상점주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가이드의 소개로 간 집이고, 시간이 없어 시세보다 많은 돈을 주고 빌렸던 것인데 이렇게 장난질을 해놓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한참을 싸우다 우리쪽 실수가 있는 것도 사실인만큼 1700루피를 돌려받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런 트러블이 있는 경우 아무리 고용한 가이드가 있다고 해도 이들은 전혀 분쟁에 껴들지 않는다.
연루되는 것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여행 중 매 순간이 그렇지만 분쟁의 여지가 없도록 순간순간 확실히 하는게 최선이다.
어쨌든 포카라에 간다면 이 상점은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위치는 서울뚝배기라는 한국음식점 바로 옆에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산악용품점은 어디를 가든 널려있으니 물품을 못 구할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포카라짱에 방을 잡고, 가이드 텐지씨에게 그동안의 수고비에 하루치를 팁으로 더해서 드렸다.
그렇게 텐지씨와의 인연은 일단락되었다.
우리의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시작 된 트레킹은 그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샤워를 하고 쌓인 빨래들을 모아 런드리서비스에 맡겼다.
얼마 되지 않아보이는데도 저울은 우리마음 같지 않았다.
이 곳에서 디스카운트와 흥정은 생활이다.
산촌다람쥐로 갔다. 스틱과 수통을 돌려드리고 맡겨놓은 우리 물품들을 되찾았다.
태훈이는 이제 냄새나는 등산화를 신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흐뭇해했다.
아이북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혁주는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며 우리의 무사귀환을 자축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베이커리에서 조각케익을 사는 중에 산에서 봤던 미국인을 만났다.
우리는 이 남자를 Fucking American이라 불렀다.
이유는 간단하다. 말 끝마다 Fucking을 입에 달고 있기 때문이다.
100% 자연산 히말라야 대마를 말아피던 녀석을 여기서 또 만날 줄이야.
함께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역사적인 하루가 끝났다.
9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잠이 솔솔 온다.
산에서 아침형 인간처럼 생활한 것이 몸에 익은 것일까?
상관없다.
우리는 해발 4130 고지를 찍은 남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