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 2011
아침부터 말썽이 생겨버렸다. 피곤한 마음에 맡긴세탁물이 빨기만하고 널지를 않았단다.
젖어있는 옷가지들을 다 들고가야 하는 건가....
각자 필요한 옷가지만 가지고 출발하기로 했다. 시누와에서는 짐을 맡길 수가 있다. ABC에서 하산하면서 다시 들려야만하는 곳이기 때문에 물건을 맡길 수가 있으므로 굉장히 유용하다.
산 위에 올라가서 먹으려고 했던 네팔 술 한 병을 포함한 몇몇 물품들을 챙겨서 롯지 여사장에게 맡겼다.
빨래를 빌미삼아 약간의 디스카운트를 받아냈다. 돈도 없는데 어찌보면 좋은 일이다.
오늘 이상하리만치 혁주가 컨디션이 좋다.
미친듯이 페이스가 올라가 있다. 약발인가...
혁주놈은 유난스럽게 약을 좋아한다. 영양제부터 시작해서 호랑이크림은 물론 비아그라까지.
몸에 무슨 이상만 있으면 일단 약부터 먹고 본다.
약사 언니와 만나면 어떤 면에선 정말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태훈이는 젖은 옷을 입고는 열낸다며 미친듯이 앞으로 나아간다. 저 죽일놈의 산악인.
사실 우리 셋 중에서 태훈이가 가장 체력이 좋고, 산을 잘 탔다.
아버님께서 산을 좋아하셔서 온갖 장비를 모두 갖고 계셔서 같이 캠핑도 간다고 하니 일단 경험이 우리들 중 최고다.
거기다 주말마다 축구, 탁구, 야구까지 하루 온 종일 운동만 하면서 체력이 키워졌다니 책상앞에 앉아 숨쉬기 운동이나 해댔던 나와는 근본이 틀리다 할 수도 있겠다.
부러운 면이다.
시누와를 출발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아침부터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사람만 적어도 5 ~ 6명은 본 듯 하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부분의 구간을 한 시간 정도에 끊었다.
데울라리 근처에 들어서니 계곡은 물론 절벽을 타고 떨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가 우리를 둘러쌌다.
시원하게 포효하는 폭포소리와 풍경들.
내일이면 목적지인 ABC에 도착한다.
ABC 뷰포인트는 어떨까?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태훈이가 비닐을 꺼내더니 제대로 우의로 변신시켰다.
재주가 좋다.
혁주와 나도 배낭에서 자켓을 꺼내입었다. 비를 맞아가며 산행을 이어갔다.
고도가 올라가니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 눈의 흔적도 보였다.
회색빛으로 탁해졌지만 아직까지 안나푸르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꺼다란 형체를 보이며 과시하고 있었다.
데울라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더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묵을 것인가?
MBC까지는 얼마 되지않는다. 길어야 2 ~ 3 시간이다. 아니 그 조차도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산행에 익숙해져있는 상태였다.
만약 오늘 MBC로 간다면 내일 코스는 MBC에서 ABC 단 한 코스다. 게다가 고도가 올라가면 식대는 물론 숙박비도 올라간다.
산행하는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며, 돈도 더 들어간다. 이득이라곤 MBC에 조금 더 일찍 도달하는 것 밖에 없다. 한 가지를 더 한다면 MBC 뷰 포인트를 볼 수 있다는 정도다.
결국 데울라리에서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나올 정도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히터를 틀어주는데 개인당 100Rs를 내야만한다. 하지만 정말 따뜻하다. 우리가 직접 틀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자기들 마음대로 틀어놓고서 우리에게 돈을 받은 것이지만 그렇게 야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찌됐든간에 그 덕에 따뜻하게 몸도 데우고, 밥도 먹었고, 빨래도 말렸으니 말이다.
식당은 사람이 많은 성수기 때 도미토리로 이용되는 듯 보였다. 중앙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침상들이 벽면을 따라 둘러치고 있었다.
이런 거 하나 갖고 있어도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겠다 싶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배터리 충전에 100Rs를 내야만 했다. 푼힐에서 만났던 어느 형님이 해 준 얘긴데 히말라야 쪽으로 올라가면 배터리 충전은 물론 샤워, 히터 등 모든게 돈이라고 한다.
네팔 트래킹이라는게 가난한 배낭여행객이 하기에는 뭔가 돈냄새가 너무 많이 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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