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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후회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법


나는 좀 기분파다. 술이 들어가거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면 더 그렇다. 그래서 주머니돈은 모두 술값이었다. 여기도 한 잔 사고, 저기도 한 잔 사고....

일을 벌이는 것도 그렇다. 어디로든 여행을 가야겠다 싶으면 무작정 티켓끊고 본게 한 두번이 아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갑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하는 경우도 다반수다. -여기에 대해선 최근 김여사에게 심심한 사과를....-

일단 질르고 나면 나중에 일단 일은 벌여봤으니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깨달았다.

나는 후회를 남들보다 안 하거나, 적게 하는게 아니라 남들보다 더 후회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 사실 남들이 어느 정도로 후회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오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생의 매 순간이 회의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었다.

5초 전에 한 말도 순간순간 머릿속에서 다시 되내이면서 오류를 수정해 나가면서 상황과 경우에 대한 대처능력을 버전업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생각할 짬이라도 생기면 그 짬을 이용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지를 검색하고, 이를 이용해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실행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유는 얼핏 기억한다.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었다.

눈치없이 행동하거나, 실수를 할 때면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다시 시뮬레이션하면서 또 다른 대처방안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를 되내이는 버릇은 그렇게 생겨났다.

이러한 버릇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이것을 후회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후회의 과정을 당연시하고 결과물인 조금이나마 발전되었다고 믿는 자신만을 인식했던 것이다.

즉, 나는 남들보다 후회를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는 인간인 것이다.

1997년에 만들어진 전설의 역작 '에반게리온 극장판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 On Air 진심을 너에게' 中 미사토의 대사가 다시 한 번 눈 앞을 스쳐갔다.


나중에 잘못을 알아차리고 후회해..

난 그 반복이었어..

헛된 기쁨과 자기혐오를 반복할 뿐..

하지만 그 때마다 앞으로 전진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후회라는 이름의 자아비판, 자기혐오는 자신의 발전과 연결되는 일방통행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후회로 가득찬, 쌀 한톨의 빈틈도 없는 이러한 후회 속의 삶은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의 삶이라 할 수 있다.

후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창피해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오늘 깨달았다.

당신은 오늘을 후회하는가?

나는 오늘을 후회한다. 고로 나는 오늘도 발전한다.

후회, 발전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인생의 필요충분요건이다.

좀 더 나아진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P.S. 오늘 이러한 생각을 갖게해준 P양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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