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인연, 그리고 출발
May 16, 2011
바퀴가 펑크나고, 버스가 고장이 나긴했지만 어떻게든 포카라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포카라짱으로 이동했다. 인도 카주라호에서 만나 바라나시까지 함께했던 소영누나가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누나가 포카라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몇 일 전 트래킹을 끝내고 산을 내려왔다는 메일을 한 통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왠지 감이 있었다.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도착하자마자 게스트 하우스 프론트에 문의한 결과 아직 머물고 있단다. 역시......
오전 5시를 갓 넘은 이른 시간임에도 방에 불이 켜져있는지 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룸비니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간발의 차로 만난것이다. 누나가 짐을 싸는 동안 옆에서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가벼운 안부에서 다른 사람들 소식, 트래킹에 필요한 정보까지.
누나와 함께 룸비니로 떠날 사람들이 포카라짱에 도착하면서 짧은 만남도 끝을 맺었다. 30분도 안되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인도에서 만난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이야. 누나가 네팔로 간다는 계획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다른 곳에서 만나니 그 느낌이 퍽 새로웠다.
포카라짱은 네팔짱의 여사장님이 같이 했었던 게스트 하우스로 현재는 네팔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다. 시설은 나쁘지 않지만 무선인터넷이 중요하다면 추천하기는 좀 어렵다. 공유기 하나로 게스트하우스 모두를 커버하기에는 신호가 너무 약하고, 잘 잡히지도 않는다. 포카라 역시 왠만한 식당, 게스트하우스들은 모두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락이 걸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밀번호는 보통 주인이나 매니저의 핸드폰번호인 경우가 많다. 숙박을 하지 않지만, 식당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인터넷이 필요할 경우 대표명함을 얻어서 접속하면 된다. 포카라 생활 시 필요한 작은 꼼수라 하겠다.
소영누나가 소개해 준 산촌다람쥐라는 한국식당으로 향했다. 포카라에서 배낭여행객들에게 꽤나 유명한 집이라 한다. 콧수염을 기른 사장님이 주방을 보시는데 배낭여행객들에게 격이 없이 대해주시고 정보는 물론 등산화, 침낭과 같은 장비들을 무료로 대여해주시기 때문에 트래킹 준비에 용이하다. 우리도 알루미늄 수통 하나, 개인이 쓸 스틱, 등산화, 모자를 빌렸다.
산촌다람쥐에서 아침을 먹고 트래킹 출발지인 나야뽈로 출발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이슬이와 함께한 것을 기념하는, 드디어 안나푸르나를 향해 떠나는 우리의 출정을 기념하는 사진이었다.
출정식
텐지씨가 아는 한 트래킹 용품점에 가서 자켓을 빌렸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나야뽈로 향하는 택시 위에 배낭을 싣고 화창한 날씨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눈으로 덮여있는 마챠푸차레를 보며 드디어 시작이라는 실감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들 피곤했는지 어느덧 모두 정신없이 잠에 빠져버렸다. 텐지씨가 나야뽈에 도착했다고 우리를 깨웠다. 차에서 내려 각자의 배낭을 메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스리랑카에서 홀로 올랐던 스리파다처럼 초입에 수많은 가게가 보인다. 우기인만큼 비올 때를 대비해서 커다란 비닐을 세 장 사서 챙겼다. 유사시 배낭을 감싸기 위해서다. 방수커버가 있기는 하지만 유사시를 위해 구입했다. 비닐은 방수커버역할도 하지만 고도가 올라가면서 그 쓰임새가 한 가지 더 추가된다. 방한용으로 그렇게 유용할 수가 없다. 필수적으로 챙겨가야 하는 아이템이다.
잠을 자지 못해서인가? 약간의 긴장? 속이 좋지 않다. 처음부터 처지기 일수다. 저질체력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인가! 쪽팔린다.
몸이 참~ 마음같지 않다.
트래킹 초입, 나야뽈 1
트래킹 초입, 나야뽈 2
땀이 비오듯 내리기 시작했다. 허기가 지니 더욱 지치는 듯 하다. 한국사람 밥힘인데...
롯지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텐지씨가 한국사람 스타일을 잘 알아서인지 밥을 먹고나면 후식으로 차나 커피를 권했다. 진한 커피와 짜이, 탄산음료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작은 산골 마을의 모습이 계속됐다.
당나귀에 롯지에서 팔 상품들을 싣고 올라가는 모습, 이 것도 일정 고도를 넘어가면 길이 좋지 않아서 직접 사람이 메고 올라간다.
울레리까지 1시간을 남겨놓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롯지에 들어가서 뜨거운 레몬티를 마시며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첫날이니 만큼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한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어린 여자아이가 영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안방마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이었다. 롯지 운영을 대부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참 야무지다.
우리가 묵었던 첫번째 롯지
롯지에서 본 전경
롯지 부엌
나무로 불을 떼는 롯지 부엌이 왠지 이국적이다. 내가 산 속에 있다고 말해주는 듯 하다.
저녁으로 먹은 달밧은 최고였다. 꼭 집밥을 먹는 느낌이랄까? 살아있는 감자의 맛!!!
달밧은 네팔사람들의 주식으로 밥과 콩으로 만든 달, 몇 가지 사이드 메뉴가 함께하는 전통음식이다. 고단백식품으로 트래킹 시 에너지 보충에 좋다. 단, 세 끼정도 연속으로 먹다보면 우리 입맛에는 쉽게 질리는 단점이 있다. 튜브로 된 소고기고추장 정도 가져가서 함께 비벼먹으면 맛나게 먹을 수 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며 개운하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속의 밤은 금새 찾아왔다.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
우리의 첫 날이 이렇게 저물어갔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에 돌입한다.
내일 모레 푼힐에 가면 끝내주는 설산이 내 눈앞에 서 있겠지?
택시로 이동하면서 잠깐 본 설산.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본 설산은 나를 뜨겁게 달궜다.
2011년 5월 16일 내가 산을 만난 날